단군 신화
목차
- 단군 신화
- 단군 신화의 내용 분리
- 단군 신화의 세 가지 세대
- 단군신화 본론 해석
- 단군 신화의 제작 이유
- 여담
1. 단군 신화
단군신화!
우리 민족의 가장 오래된 신화이며 유일한 신화지요.
시작하기 전에.. 이건 제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물론 여러분이 들어보신것도, 모르시는것도 있기는 할 테지만, 전적으로 제 주관이 섞인 해석임을 유념해주세요.
물론 종류는 여러 가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삼국유사』의 편찬자 일연의 단군 신화가 가장 유명할 것입니다.
좋아요, 원본을 한번 끌어와 봅시다.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1. “옛날에 환인(桓因)의 서자(庶子)인 환웅(桓雄)이 천하(天下)에 자주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2.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伯)을 내려다보니 인간(人間)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天符印)세 개를 주며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3. 웅(雄)이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정상 신단수(神壇樹;神檀樹) 밑에 내려와 신시(神市)라 하고 이에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하였다.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명(命)·병(病)·형(刑)·선악(善惡) 등 무릇 인간의 삼백육십여 가지의 일을 주관하며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4. 이때에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있어 같은 굴에 살면서 항상 신(神) 환웅(雄)에게 기도하되 화(化)하여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이에 신 환웅은 신령스러운 쑥 한 타래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百日)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의 모습이 될 것이니라.’라고 하였다.
곰과 호랑이는 그것을 받아서 먹어, 기(忌)한지 삼칠일(三七日)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금기하지 못해서 사람의 몸이 되지 못하였다.
5. 웅녀(熊女)는 혼인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매양 단수(壇樹;檀樹) 아래서 잉태하기를 빌었다. [환]웅이 이에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그녀와 혼인하였다.
6. [웅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 단군왕검(壇君王儉;檀君王儉)이라 하였다. 당(唐)의 고(高)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庚寅)으로, 평양성(平壤城)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하였다.
7. 또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에 옮겼는데, 궁(弓) 홀산(忽山)이라고도 하며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한다.
그 후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주(周)의 호왕(虎王-武王-)이 즉위한 기묘(己卯)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은 곧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 산신(山神)이 되었으니 수(壽)가 1,908세다.”라고 하였다.
2. 단군 신화의 내용 분리
대충 내용은 7개의 토막으로 쪼갤 수 있는데..
(편의상 본론에도 숫자를 붙였습니다, 저 숫자들은 편의상 추가한 것이며 본론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1. 환인과 그 아들 환웅의 가계
2. 환웅이 아버지 환인의 도움을 받아 하늘에서 내려옴
3. 신단수 아래에서 인간세상을 다스림
4. 곰이 호랑이와 함께 사람되기를 원하지만 곰만 사람이 됨
5. 이 사람이 된 곰이 환웅과 혼인함
6. 이 가족의 자식을 이름지어 단군왕검이라 하고 평양의 도읍을 하여 조선을 개국함
7. 단군왕검이 1,908세에 아사달에 숨어 산신이 된 일
3. 단군 신화의 세 가지 세대
좋아요. 이제 심화적으로 좀 뜯어봅시다.
단군신화는 이른바 '건국신화'입니다, 기본적으로 하늘에서의 내림(천손강림)과 왕국의 건국(건국서사)이 합쳐져 있습니다.
다만 단군신화만의 특이점은 하늘에서 내린 1대(환웅)가 왕국을 건설하지 않고, 2대(단군왕검)이 건국하는 특이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 두 세대 위에 하늘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천신(환인)은 1대(환웅)를 내려보내는(파송자)의 구실을 하며 하강자를 도와줍니다.
즉 이 세 새대는 각각
세대 | 태생 | 과업에 대한 평가 | 직책 | 거점 | 천손강림 |
환인 | 천상의 신 | 과업의 위탁자 | 천신 | 파송자 | |
환웅 | 지상의 신 | 과업의 수행자 | 천왕 | 신시 | 하강자 |
단군왕검 | 특별한 인간 | 과업의 완성자 | 왕검 | 왕국 |
정도로 구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표를 보면 느낌적으로 환웅은 무속적인 느낌이 강하고, 단군은 세속적으로 가까운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4. 단군신화 본론 해석
자, 이제 본론을 해석해 볼까요... 물론 해석은 사람마다 다르기에, 이건 제 주관적인 해석임을 한번 더 말씀드립니다.
1. “옛날에 환인(桓因)의 서자(庶子)인 환웅(桓雄)이 천하(天下)에 자주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환인은 하늘의 신이며, 고대 사회의 신에서는 가장 높은 것이 하늘의 신입니다.
가끔 하느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던데.. 우리나라에 크리스트교가 전래된 시기는 조선 후기이기 때문에, 단군신화가 적힌 고려 중기의 시대상을 고려하면 이건 그냥 하늘신입니다.
즉,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왕검은 하늘 신의 손자고! 우리는 신의 후손이야!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약간의 선민사상이 등장합니다. 물론 선민사상이 무조건 나쁜건 아닙니다, 건국신화라는 것은 민족의 대표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정도 선민사상은 간단하게 넘겨줍시다.
2.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伯)을 내려다보니 인간(人間)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天符印)세 개를 주며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 이는 홍익인간의 이념입니다. 이후 이 이념은 우리나라의 최고 이념으로 자리 잡아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대중적으로는 이 천부인 3개가 각각 청동검, 청동거울, 청동방울로 알려져 있습니다.
환웅 세력이 청동기시대 문화에 기반했다는걸 알 수 있는데..
본론을 보시면 천부인 3개를 줬다고는 나와 있지만, 뭔지는 안 나와 있습니다.
단지 역사적 사료와 유적지를 보고 판단할 뿐이지요.
3. 웅(雄)이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정상 신단수(神壇樹;神檀樹) 밑에 내려와 신시(神市)라 하고 이에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하였다.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명(命)·병(病)·형(刑)·선악(善惡) 등 무릇 인간의 삼백육십여 가지의 일을 주관하며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한자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들은 각각 바람, 비, 구름을 의미하며, 이는 당시 사회가 농경사회임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농사에는 기후와 날씨가 중요했습니다)
여기서는 환웅이 법률을 주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조선이 법치국가(法治國家) 임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4. 이때에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있어 같은 굴에 살면서 항상 신(神) 환웅(雄)에게 기도하되 화(化)하여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범(호랑이)를 숭배하는 부족과 곰을 숭배하는 부족이 같이 살았음을 의미합니다.
토테미즘은 신석기 문화에서 나타나므로, 이 두 부족이 천부인을 받은 환웅 부족(청동기 부족)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신 환웅은 신령스러운 쑥 한 타래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百日)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의 모습이 될 것이니라.’라고 하였다.
쑥과 마늘은 예로부터 동아시아에서 약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서는 생명의 창조와 변화를 돕는 신성한 요소로 작용했다고 하며, 일종의 "통과의례"에 해당합니다.
곰과 호랑이는 그것을 받아서 먹어, 기(忌)한지 삼칠일(三七日)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금기하지 못해서 사람의 몸이 되지 못하였다.
곰 부족은 여자의 몸을 얻었습니다. 즉 모태가 되었다는 의미이고, 범은 씨앗을 받을 자격이 없었음을 의미합니다.
보통 만화에서는 호랑이가 굴을 나가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어.. 본문을 보면 아시겠지만 범은 그냥 금기를 어긴 거지 굴을 나간 건 아닙니다.
5. 웅녀(熊女)는 혼인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매양 단수(壇樹;檀樹) 아래서 잉태하기를 빌었다. [환]웅이 이에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그녀와 혼인하였다.
역사적 시점에서 해석하면 환웅 부족과 곰을 신으로 모시던 웅녀 부족이 통합되어 하나의 부족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즉, 환웅으로 대표되는 이주집단이 토착 집단과 통합되는 것을 의미하지요.
6. [웅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 단군왕검(壇君王儉;檀君王儉)이라 하였다. 당(唐)의 고(高)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庚寅)으로, 평양성(平壤城)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하였다.
단군왕검은 사람 이름이 아닙니다. 이유는.. 환인-환웅으로 이어지는 "환" 자 돌림을 사용했는데 갑자기 단군이라니, 사람 이름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현재로선 단군왕검을 단군/왕검으로 분리해서 단군은 종교적 지도자, 왕검은 정치적 지배자의 의미로 해석하는데, 여기서 고조선이 제정일치사회임을 의미합니다. 아직 왕권이 많이 연약함을 볼 수도 있습니다.
7. 또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에 옮겼는데, 궁(弓) 홀산(忽山)이라고도 하며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한다.
그 후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주(周)의 호왕(虎王-武王-)이 즉위한 기묘(己卯)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은 곧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 산신(山神)이 되었으니 수(壽)가 1,908세다.”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기자조선의 내용과 겹쳐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쪽은 아직 학계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는지라..
5. 단군 신화의 제작 이유
마지막으로, 일연이 단군신화를 작성한 이유에 대하여
당연히 아시겠지만, 단군신화는 신화입니다. 역사가 아닙니다.
물론 100% 틀렸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신화는 구전으로 내려왔고, 모든 신화가 허구는 아니니까요.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단군신화가 왜 만들어졌을까요?
단군신화는 대략 고려 1280년대에 만들어졌습니다. 이때는 고려가 원간섭기던 시절입니다.
가장 가능성 높은 추론 중 하나는 원간섭기의 상황 속에서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고취시키고,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 민족이 이렇게 좋은 민족이다! 를 보여주기 위해서 제작된 것입니다.
6. 여담
단군신화가 100% 실화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꽤나 많은 사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서자(庶子)라던가 말이죠.
서자(庶子)는 첩의 자식을 의미하는데.. 첩의 자식이 저때 있었을까요..?
저 시대가 고조선의 건국이라고 치면.. 아니 사실 건국보다도 전일겁니다.
단군왕검은 B.C.2333년에 (고)조선을 건국했는데, 저 때 서자의 개념은커녕 글자도 없을 겁니다.
한자는 중국사에서 기원전 6600년경부터 생겼다.. 이러고 있는데, 한자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갑골문이 기원전 1200년에 발견되었습니다. 저게 발견되기 전까지는 상나라조차도 전설로 여겨졌는데 말이지요..
마지막으로 고조선이라는 나라는 없었습니다.
'고조선'은 우리 역사학계에서 편의상 붙이는 거고, 그냥 '조선'이라고 부르는 게 맞습니다.
단지 우리가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과 위만이 찬탈한 '위만조선'과 구별하기 위해 '고'자를 붙이는 것일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