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위기
목차
- 중국의 통일
- 고구려-수 전쟁
- 신라의 혼란
- 신라의 전쟁
1. 중국의 통일
자, 저번에 신라는 대대적으로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근데 좀 의문, 고구려는 뭘 했나요?
그건 중국 쪽이랑 같이 봐야 하는데...
이런, 중국이 통일되어버렸어요.
중국의 강대한 통일왕조, 수(隋)의 등장입니다. 수(水) 가 아닙니다.
아무튼 이 수나라는 중국의 혼란을 끝내고, 대운하를 지어서 강남과 화북 지역을 연결했으며, 사방으로 정복활동을 개시합니다.
이러한 정복활동 중 하나로 고구려를 공격하니, 고수전쟁의 발발입니다.
2. 고구려-수 전쟁
아 이거 겁나 많네...
자, 하지만 고구려는 맞고있지 않아요.
일단 선빵을 때려 봅니다.
고구려의 영양왕은 598년, 수나라를 향해 선제공격을 날립니다.
말갈/거란 기병 1만여 기를 동원하여 요서지방을 약탈하고 초토화시킵니다.
이 덕분에 수나라는 회원진/통정진의 보급망이 박살나고 산해관 후방에서야 출발이 가능하게 됩니다.
이러한 고구려의 도발에 크게 분노한 수나라의 문제는, 동일연에 30만 대군을 끌어모아 공세를 개시합니다.
수 문제의 30만 대군은 탁군에서 출발해 산해관을 거치지만...
음, 하필 출병한게 여름이었네요, 장마와 태풍으로 병력이 살살 녹아내립니다.
뭐, 학자들은 고구려와 싸워서 대패하고 수나라 측에서 고의적으로 패전을 축소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패전에 큰 충격을 받은 문제는 공격을 멈추고, 이렇게 잠깐 평화의 시간이 오나 했더니...
수의 명군 문제가 사망하고, 수의 역대급 암군 양제가 등장합니다.
수 양제는 자신의 명성을 채우기 위하여 고구려에 다시 원정을 도전하니..
수 양제의 1차 침입입니다.
수 양제는 무려 3백만, 순수 전투인원 133만을 이끌고 고구려 공격에 나섭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요동성에서 막히고, 몇 달을 놀다가 결국 우중문과 우문술을 시켜 별동대를 이끌고 평양성으로 직공을 시킵니다.
보급은 내호아의 수군을 사용할 계획이었지만, 내호아의 수군은 이미 박살나서 바다밑에 있는걸요.
결국 보급도 없는채로 퇴각하다가 살수에서 전군이 수장당하고 맙니다. 저런.
당연하게도 양제의 본대도 퇴각.
뭐, 여기서 유명한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가 나오니,
神策究天文(신책구천문) 귀신같은 책략은 하늘의 이치(천문)를 깨달았고
妙算窮地理(묘산궁지리) 신묘한 셈은 땅의 형편(지리)을 다하였도다
戰勝功旣高(전승공기고) 싸움에 이겨 공이 이미 높으니
知足願云止(지족원운지) 원컨대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
아, 해석하자면..
"그대의 책략이 훌륭하다"
(와 얼마나 머리가 좋으면 이렇게 잘 싸우심?)
"지형을 잘 알아 전략을 훌륭하게 사용하고"
(보급도 안 되는곳에서 뭐 하는 짓이냐)
"뛰어난 공을 쌓았으니"
(을지문덕이 별동대를 유인하기 위해 7번 거짓 패배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쯤 만족하고 돌아가라"
(안 돌아가면 다 죽이겠다)
정도로 보이죠? 해석하면 "와 너 잘하네 여기까지만 하고 그만두셈" 이지만..
실제로는 "그 뇌로 싸움이 되겠니? 빨리 튀면 살 수 있을지도?"
아무튼 별동대는 살수의 고기밥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우리 수양제는 근성가이예요. 절대 포기하지 않죠.
30+a만을 말아먹고도 정신을 못 차렸는지 2차 침공을 개시하니, 수 양제의 2차 침입입니다.
이번에는 요동성에 맹공을 펼치고, 이전보다 적은 병사를 가져왔음에도 요동성을 함락 직전까지 몰아가지만.
어라, 본토에서 반란이..
결국 수 양제는 이번에도 도망.. 아니 퇴각합니다.
하지만 삼세판을 목전에 둔 수양제는 한번 더 고구려를 공격하니, 수 양제의 3차 침입입니다.
하지만 알잖아..? 안될거야..
수 양제의 3차 침입으로 비사성을 함락하는 데 성공하지만..
글세요, 이미 수나라 내부는 개판이네요.
함락했던 비사성도 이미 고구려가 탈환하고, 수나라는 각지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명을 달리하니..
수나라의 멸망입니다.
수 양제가 얼마나 말아먹었는지, 수 문제 시절의 국력을 중국은 당-오대십국-송에 이어지는 치세에 들어서야 겨우 수복하니, 지도자 하나 잘못 두었다가 국가 자체가 망해버렸네요..
3. 신라의 혼란
자, 신라는 백제와 함께 나제동맹을 체결해서 고구려를 공격했어요.
근데... 한강 유역을 다 먹어버리니 전선이 2개가 되어버립니다.
그 덕분에 여제동맹이 결성되고..
백제의 관산성 공략을 한 차례 격퇴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대가로 신라는 한반도에서 고립되어 버렸어요.
하지만 방법은 있으니, 한강 유역의 당항성을 이용해 수나라와 동맹을 맺습니다만..
어라, 수나라는 고구려와 영혼의 한타를 벌이다 멸망하니, 신라의 고립입니다.
심지어 이때 신라는 내부에서도 좋지 못했어요, 신라의 근간인 골품제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골품제가 뭐냐? 신라의 가장 기본이 되는 신분제도로, 성골(왕족)과 그 이하의 진골, 따까리인 6,5,4두품 등으로 이루어지는 제도인데..
문제는 성골 왕족들이 다 죽어버립니다. 어라, 남은 건 여성뿐이에요.
그래서 한국사 최초로 여성 왕이 등장하니, 선덕여왕입니다.(문명 7에도 나왔죠?)
근데 저 시대 여왕이란 건 좋지 못해요, 많은 진골들이 자기도 왕이 되고 싶다고 난리가 나고..
선덕왕(善德王)은 진평왕의 첫째 딸로 신라 최초의 여왕이고, 진평왕은 딸만 다섯에 아들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신라에서 내분과 대립이 이어지고, 신라의 국정운영이 불안해지고..
친여왕파와 반여왕파로 신라가 분열되니, 신라의 대혼란입니다.
친(親) 여왕파의 김춘추와 김유신, 반(反) 여왕파의 비담과 염종 등이 대립합니다.
여담으로 이때 황룡사 9층 목탑이 김춘추의 아버지 김용춘에 의해 중건되는데,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라고 중건되었네요.
뭐, 덤으로 여왕의 부족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에도 필요하겠죠?
덕분에 친여왕파 세력이 종교적에서 확장을 성공하기는 합니다.
4. 신라의 전쟁
그걸로 끝났다면 어떻게든 수습은 가능했겠지만, 백제의 의자왕이 칼을 갈고 신라에 공격을 펼치고, 고구려 또한 중국 세력의 위협이 줄어들자 신라로 공세를 펼칩니다.
642년, 대야성이 함락당하자 신라에는 대위기가 찾아옵니다.
대야성이 함락당했다는 것은 소백산맥이 무너졌다는 것이고, 즉 옛 가야 지방이 전부 위기에 빠진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신라는 옛 가야 지방의 전력을 대부분 소실하고 압독주(현 경산(대구 인근)) 지방에 백제 방어선을 세웁니다.
(실제로 화살표에도 경주의 목전까지 백제의 공세가 닿는다...)
이건 결국 임시방편이고, 결국 대야성을 되찾던지 해야 수도 경주가 멀쩡할텐데..
근데 신라는 친구가 없어요, 수나라는 망했고, 고구려는 적대관계고, 음..
임시방편으로 642년 겨울, 김춘추가 고구려를 방문해서 원병을 요청하지만 해줄 리가 없죠.
그 사이, 일단 김유신이 644년, 645년 두 번에 걸쳐 압독주에서 백제의 공세를 저지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러한 혼란기의 647년 1월, 반여왕파 세력의 거두 비담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이 반란은 김유신이 제압하는 데 성공하지만, 선덕여왕이 사망하고 이후 진덕여왕이 왕위를 이어받아요.
왜 1월에 반란을 했냐 하면 일본사기에 이때 김춘추가 일본에 방문했는데(신뢰성은 낮음) 일단 방문 이유는 일본에도 여성 왕이 있어서라고 추측됩니다.
근데, 반란은 세력이 밀릴 거 같을 때 터지잖아요?
즉 친여왕파들이 정치세력에서 우세해지기 시작한 시점이라는 겁니다.
이 반란을 김유신(친여왕파)이 제압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신라의 내부적 문제를 일단 해결하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외부로는 고구려와 백제가 대공세를 펼치고 있었으니, 신라는 여전히 고립무원의 상황입니다.